우리나라의 경영학 교육의 효시를 멀리는 1905년에 보성전문대학(지금의 고려대학교)이 이재학(理財學) 전문과를 설립하여 재산을 관리하는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으로 삼기도 하지만,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를 갖춘 경영학 교육은 1950년대 중반에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가 상학과를 개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즈음에서야 우리나라에 기업다운 기업들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기업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경영학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1970년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곳 개신벌에서 경영학 교육이 그 여린 첫 싹을 틔우기 시작하였다. 1977년 3월에 국립 충북대학에 경영학과가 신설되고 4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경영학 교육은 그 후 또 한 번의 30년이 지난 현재, 개신벌 경영학 교육의 산실인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이 중부권의 중심적인 경영대학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면서 지난 세월의 도도함을 웅변하고 있다.

경영학과 설립 후 격동의 30년이 흐른 2007년 10월 현재 본 경영대학은 그 산하에 경영학부와 국제경영정보시스템 학부 등, 2개의 학부와 일반대학원 및 경영대학원, 그리고 이 지역 최고경영자를 위한 개방강좌인 최고경영자과정을 두고 있는 규모의 대학으로 자라났다. 경영학 전공교수 한 명 없이 초라하게 시작했던 경영학과는 이제 경영학부에 20명, 국제경영정보시스템 학부에 17명 등, 37명의 전임 교수를 거느리고 있으면서 매년 450여명에 달하는 학사 및 석·박사를 배출하는 중부 거점의 핵심적인 경영대학으로 성장하였다.

이제 경영학 교육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경영대학의 지난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지난날의 영욕을 찬찬히 되새김질 해보고, 그 되새김질 속에서 앞으로 우리 경영대학이 우리나라 경영학교육에서 오롯이 수행하여야할 몫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넉넉하게 치러내기 위해서는 어떤 각오와 준비가 있어야 하겠는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모든 환경이 마찬가지이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교육환경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러한 급격한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우리의 각오와 준비는 비상한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

경영대학의 30년 역사를 살펴보기에 앞서 경영대학의 주요 연혁을 들면 다음과 같다.

독립된 단과대학으로서의 경영대학의 출범은 경영학과가 인문사회과학부에 신설되고 첫 신입생을 선발한 1977년 3월부터 꼭 10년이 지난 후인 1987년 3월에 이루어졌다. 그 사이 10년의 기간 동안을 경영대학의 태동기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시기 동안에 경영학과 뒤를 이어서 회계학과와 무역학과가 잇달아 신설되고 전임 교수의 수도 크게 늘어나면서 개신벌 경영학 교육의 요람인 경영대학으로서의 기본 뼈대가 만들어졌다.

 

<1977년>

1976년 12월 31일, 국립 충북대학 본부는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오래 동안 대학 당국과 도민의 숙원사업이던 종합대학 승격과 관련된 매우 뜻 깊은 통보를 받게 된다. 그 동안 충북대학이 종합대학교로 승격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끈질기게 설립을 추친하고 있던 인문사회학부가 문교부로부터 설립인가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인문사회과학부가 설립 인가를 받음으로서 국립 충북대학은 그 산하에 농학부(농과대학 전신), 교육학부(사범대학 전신), 공학부(공과대학), 약학부, 인문사회과학부(경영대학, 인문대학 및 사회과학대학 전신) 등 5개 학부를 거느리면서 종합대학교로서의 기본꼴을 갖추고 머지않은 장래에 종합대학교로의 승격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설립된 인문사회과학부에는 행정학과, 경영학과 및 사학과 등 3개 학과가 신설되었는데, 행정학과와 사학과의 정원은 30명, 경영학과의 정원은 40명이었다.

드디어 1977년 3월. 인문사회과학부 경영학과가 첫 신입생 40명을 선발하면서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의 역사적인 첫 주춧돌이 놓여졌다. 경영학 전공 전임교수는 아직 선발조차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제학과 교수이던 이형배 교수가 임시적으로 경영학과 소속으로 전임이 되어 경영학과장을 맡으면서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첫 해의 신입생은 전국의 어느 대학 경영학과 신입생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우수한 자원이었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대학교 경상대학이 이미 탄탄한 틀을 갖추고 그 대학 출신들이 지역적 기반을 대부분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립대학이라는 이점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이들 첫 신입생들은 그 뒤에 속속 부임한 전임교수들이 전공을 원서로 강의하거나 전공 모의시험을 치르고 직접 영어 강사를 자임하는 등, 교수들의 열성적인 뒷받침을 받으면서 4년 뒤인 1981년 졸업생 거의가 서울의 대기업과 주요 은행에 취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1978>

1978년 3월에 국립 충북대학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충북대학이 국립 충북 종합대학교로 승격되면서, 농학부가 농과대학, 교육학부가 사범대학, 공학부가 공과대학, 인문사회과학부가 사회과학대학 등 4개의 단과대학으로 전환되고, 입학정원이 30명이던 약학부는 해체되면서 약학부 소속이던 약학과는 농과대학 소속으로 임시 거처를 삼는 묘한 상황도 있었다. 다행히 이러한 묘한 상황은 1978년 10월에 약학과 정원이 50명으로 증원되어 약학대학이 신설을 인가를 받으면서 해소되었고, 그와 함께 자연대학도 설립 인가를 받음으로써 종합대학교로서의 충북대학교는 6개 단과대학을 산하에 거느린 종합대학교로서의 품새를 갖추게 되었다.

1978년은 본 경영대학으로서는 매우 의미있는 한 해였다. 바로 이 해에 충북대학이 종합대학교로 전환되면서 인문사회과학부 소속이던 경영학과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경영학과는 종합대학교 승격과 함께 사회과학대학 소속으로 자리를 옮기고 정원도 80명으로 증원되면서 두 번째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었으며, 동년 10월에는 사회과학대학 내에 경영학 계열인 무역학과 80명, 회계학과 80명이 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후에 경영대학으로 성장할 토양이 마련된 해이기도 했다. 설립 두 해째이긴 하지만 경영학 전공과목인 경영학원론을 경제학과 전공교수이던 조수종교수가 담당하는 등, 아직 학과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경영학과는 물론, 새로 설립인가를 받은 회계학과와 무역학과의 정상적인 수업을 위해서는 전임교수 모집이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1979>

1979년 3월, 현재 경영대학의 모태가 된 경영학과, 회계학과, 무역학과가 240명의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그와 함께 드디어 세 학과의 전임교수도 속속 부임하기 시작하였다. 1978년에 충북대학교 첫 총장으로 부임한 정범모 총장은 우수한 교수요원을 공정하게 선발한다는 원칙을 정하고 신임교수모집 응모자들 모두에게 영어시험을 치르게 한 다음 그 성적을 선발 기준으로 하여 신임교수를 선발하였다. 그러한 선발기준은 영미권이 아닌 곳에서 유학한 응모자들을 포함하여 일단의 응모자들로부터 오히려 불공정하다는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러한 선발 방침은 그 후에도 정범모 총장 재임 동안 지속되었다.  

지금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정범모 총장은 그러한 선발 과정을 거쳐 교수의 지역성 탈색과 우수교수자원 유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자 하였고, 그 결과 1979년 3월에 경영학과에 황의록(마케팅 전공), 장익환(재무관리 전공) 등 두 명의 전임교수가 부임하였으며, 마케팅 전공으로 채용된 이동수교수가 회계학과 전임으로 부임하였다. 이어서 동년 9월에는 무역학과에 김영래(무역경영) 교수가 무역학과 전임교수가 부임하면서, 세 과가 모두 자체적으로 전임교수를 보유하는 학과로서의 기본틀을 갖추게 되었다. 1977년 경영학과 설립 후 경영학과 교수로 배속되어 있던 이형배 교수와 조수종 교수는 1979년 3월에 사회과학대학에 경제학과가 신설되어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원래 전공이던 경제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980>

1980년은 모든 대학들이 대외적으로는 큰 혼돈을 경험하는 시기였다. 충북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1980년 5월 17일 광주민주화 운동을 전후하여 일기 시작한 학내의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었고, 학내는 매일같이 전두환 독재 반대 데모와 노동삼권을 부르짖는 학생 운동의 열기로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지경에 처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대학교수들의 능력에 대한 평가를 공공연 의제로 들고 나오면서 무능한 교수들의 명단까지 대자보에 공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어수선한 환경 속에서는 정상적인 수업은 가능하지 않았으며, 대학 본부는 언제나 일어날지도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매일 교수 전원을 밤늦게까지 학내에 대기시키는 조치를 취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해는 경영학 관련 세 학과가 적극적으로 전임교수를 유치하기 시작하는 해이기도 했다. 동년 3월에 양종택(생산관리), 김주엽(조직행동) 등 두 명의 교수가 경영학과 전임 교수로 구본열 (재무회계) 교수가 회계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이어서 동년 10월에는 서도원(인사관리), 곽병관(재무관리) 등 두 명의 경영학과 전임교수와 백대기 (원가회계) 회계학과 전임교수가 부임함으로써, 경영학과가 설립되어 신입생을 선발한 1977년 3월로부터 3년이 지나면서 경영학 관련 전임교수의 수가 열 명으로 늘어나는 가파른 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신설된 사회과학대학은 자체 건물이 없이 지금은 동아리방으로 사용되고 있는 04동 11동 건물을 단과대학 본부 및 강의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어난 교수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어서 교수들이 학장(안홍국 사회과학대학장)실과 교학과장(조수종 교수) 연구실 밖에 놓여있던 긴 의자에 줄줄이 앉아 있다가 수업 시간에 맞추어 들어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강의는 동아리방 앞에 위치하고 있는 04동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의 수준에서 보면 대학 강의실이라기보다는 50년대 고등학교 교실 같은 형태인 장소였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은 지금 구학생회관 건물이 완공을 보면서 03동 건물 속에 임시로 교수연구실을 몇 개 마련하고 그 연구실을 두 명의 교수가 같이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였다. 이 임시 거처 생활은 지금의 사범대학 건물이 1981년 초에 완공을 보면서 6개월 만에 끝이 났지만, 사범대학에 마련한 거처도 임시 거처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공간이 부족하여 기존 연구실을 반으로 쪼개 합판으로 가려서 교수 연구실로 두 개로 만들어 배정하는 열악한 환경은 사회과학대학 건물이 완공되는 동년 9월까지 지속되었다.

 

<1981>

1981년 초에는 교수 요원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 한 해였다. 문교부가 경영학교육의 선진화를 위해 마련된 IBRD 차관의 지원을 받아 경영학과 교수들의 유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실시함에 따라 지난 3년 간 힘들여 초빙했던 경영학과 및 회계학과 전임교수 세 명이 한꺼번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영학과 소속이던 황의록 교수와 장익환 교수, 회계학과 소속이던 구본열 교수가 1981년 8월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지금과는 달리 지역적 한계로 시간강사마저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교수가 과중한 수업을 떠맡아야 하는 좋지 않은 상황이 한 동안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전임교수의 초빙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1981년 3월에 마케팅 전임교수로 경영학과에 안길상교수가 부임을 하고 무역학과에는 무역실무와 무역영어를 담당할 김복문 교수, 그리고 외환관리를 담당할 이현종 교수가 부임하면서 경영학과와 회계학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늦은 교수 충원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1981년 2월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 경영학과는 그 당시에만 해도 청주 인근 지역에서 대학 졸업자를 필요로 하는 취직자리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졸업생들 대부분이 서울에 근거를 두고 있는 대기업들의 공채시험에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과 정보 부족으로 본시험에는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떨어지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곤 하였지만 결국 졸업생 대부분이 서울 소재 대기업이나 은행에 취업하는 성과를 이루었고, 지금도 경영학과 1회 졸업생들은 전국 각지 여러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2>

1982년은 졸업정원제가 실시되던 해였다. 이전에 실험적으로 실시되었던 계열별 모집 (계열별로 입학한 후에 2학년 때 자신의 학과를 정하는 제도)이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면서 표류하고 있던 와중에, 문교부가 대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업능력을 고취한다는 목적으로 입학정원의 30%를 더 뽑은 다음에 이를 교육과정에서 걸러내는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계열별 모집은 제대로 실시도 하지 못한 채 폐기되고 경영학과․무역학과․회계학과 공히 신입생으로 104명을 선발하여 교육한 다음 4년후 졸업 시에 24명을 의무적으로 탈락시키고 80명만을 졸업시키도록 제도화 되었는데, 이 졸업정원제도 제대로 실시되지도 않은 채 문제점만을 쏟아놓아 놓으면서 폐기되고 결국 학과의 입학정원만 늘려놓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1982년에도 교수의 충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동년 3월에 국제무역론과 무역정책을 담당할 정정도 교수가 무역학과 교수로, 관리회계를 담당할 정재권 교수가 회계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였고, 동년 9월에는 재무회계와 국제회계를 담당할 이장희 교수가 회계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전임교수의 충원은 일단 숨을 고르게 된다.   

 

<1983. 3. - 1987. 2.>

그 후 1983년 3월부터 1987년 2월까지는 표면적으로는 별 변화가 없는 평온한 기간이었다.

1983년 2월에는 무역학과와 회계학과 1회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전임교수 구성도 충원이 거의 완료되어 별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1984년 8월에 경영학과 소속 김주엽 교수가 미국 유학을 떠났지만 휴직 처리가 되면서 교수 충원은 하지 못하였고, 1985년에 고석하 교수 (후에 경영정보학과 교수로 전보)가 생산관리 담당 전임교수로 경영학과에 부임하였다.

이러한 평온한 기간은 경영대학이 단과대학으로 인가를 받는 1986년 11월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그 평온한 속에서 경영학과·무역학과·회계학과 등 경영학 관련 세 학과는 자신들이 속한 단과대학을 키워내는 꿈을 속으로 키워나가고 있었으며, 그것을 사회적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1986년 5월부터 경영학과(학과장 서도원), 회계학과(학과장 이장희), 무역학과(학과장 정정도)는 학문 영역상 대학 분리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대학 분리를 위해 경제학과와 협의를 진행하였으나 경제학과는 사회과학대에 남기로 해 3개학과 독립문제를 논의하였다. 대학 명칭은 경상대학, 경영대학, 상과대학, 상경대학 등이 거론되었으며, 학과간 명칭에 대한 이견으로 이장희 학과장 연구실에서 3차례 회의가 열렸다. 무역학과의 참여여부와 대학명칭이 논란거리가 되면서 회의 결과 경영대학 8표, 경상대학 5표로 경영・회계・무역학과가 경영대학 명칭으로 분리하기로 하였으며, 경제분야를 고려해 연구소 명칭을 산업경영연구소로 결정하기로 하였다.(영문명칭은 College of Commerce and Business Administration 으로 함) 사진첩에 첨부된 분리사유서와 같이 1986년 6월 분리 신청하였고, 그리고 마침내 1986년 11월에 개신벌 경영학 교육에 획기적인 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바로 경영대학의 탄생이었다.

 



이 시기는 본 경영대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사회과학대학에 소속되어 있던 경영학과․무역학과․회계학과 등 세 학과가 주축이 되어 경영대학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경영대학의 설립은 다음과 같은 취지를 가지고 추진되었다.

첫 째, 경영학․무역학․회계학 등은 순수사화과학이라기 보다는 산업 현장이나 기업현상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실천적인 성격을 띈 응용과학 학문 분야이므로 학문적 성격상 분리되어야 한다.

두 째, 경영학․무역학․회계학은 공히 기업이라는 공통의 연구대상을 가지고 있어서 학문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그 연계성을 촉진하기 위해 독립된 단과대학으로 운영되는 것이 학문발전에 도움이 된다,   

세 째, 국립 종합대학교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내 주요 대학들이 경영대학 체재로 운영이 되고 있는 반면에, 충북대학교의 경영학과․무역학과․회계학과 등은 사회과학대학 내에 소속되어 타 대학교와의 학문적 교류나 학회 활동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

네 째, 중부고속도로의 건설과 청주공단이 가동되면서 경영학 관련 교육을 받은 졸업생의 수요는 크게 늘고 있고 현대 경영학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지역의 경영자들의 수도 늘고 있는데, 경영학 교육을 받은 우수한 졸업생과 지역경영자들의 경영학 지식에 대한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단과대학이 가지는 자율성이 필수적이다. <관련자료 사진첩참조>

이러한 취지의 사회적인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마침내 1986년 11월에 설립 인가를 받게 되어 선진국 추세나 학문 영역의 정체성 확립과 걸맞게 경영대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경영대학이 자율성을 가진 하나의 단과대학으로 출범하면서 개신벌의 경영학 교육 환경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1987년>

드디어 1987년 3월에 새로 설립된 경영대학이 시운전에 들어갔다. 경영대학 초대 학장으로 양종택 교수가 임명되었으며, 신설된 경영대학을 빠른 시간 내에 정상화시켜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떠맡게 되었다. 양종택 학장은 계속적으로 연일 이어지는 교수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영대학 건물 신축, 연구소의 설립, 대학원의 설립, 지역경영인을 위한 최고경영자과정의 신설 등, 굵직한 현안들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신설된 경영대학 소속의 세 학과는 각각 80명씩 경영대학 신입생 240명을 선발하였다. 동년 11월에는 무역학과와 회계학과가 정원을 100명으로 증원 인가를 받았으며, 경영정보학과가 입학 정원 60명으로 신설 인가를 받았다.

그 동안 잠잠했던 전임교수에 대한 변화도 일기 시작했다. 1981년에 미국 유학을 떠났던 구본열 교수가 귀국하여 회계학과 전임교수로 귀임하였는가 하면, 같은 시기에 미국 유학을 떠나 있으면서 그 동안 휴직 처리로 경영학과 소속 교수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황의록 교수와 장익환 교수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다른 대학에 자리를 잡음에 따라 황의록 교수는 1987년 3월에, 장익환 교수는 동년 8월에 경영학과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무역학과에는 서옥석 교수가 새로 부임을 하였다.  

 

<1988년>

1988년은 경영대학이 그 모습을 크게 깨뜨리면서 낡은 껍질을 벗고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한 해로 기억될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이루어지는 해였다. 3월에 무역학과와 회계학과는  입학 정원이 100명으로 증원됨에 따라 각 학과가 100명의 신임생을 선발하였고, 신설된 경영정보학과가 첫 신입생 60명을 모집함에 따라 경영학과 80명, 무역학과 100명, 회계학과 100명, 경영정보학과 60명 등 총 340명의 경영대학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또한 회계학과(학과장 이장희교수)가 1987년 10월에 대학원 석사과정 설립인가를 받음에 따라 회계학과 석사과정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경영대학도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경영대학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기구를 설립되기도 하였다. 경영대학 교수들의 연구를 돕고 지역상공인에 대한 경영자문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영대학 부설 산업경영연구소가 설립되었고, 교수들의 논문출간을 지원하기 위해서 동 연구소에서는 『산업과 경영』이라는 학술지를 년 2회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1988년은 또한 경영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해 상아탑의 문을 열기 시작하는 해였다. 이 해에 본 경영대학은 다른 경영대학들이 기본적으로 설치하고 있던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하게 된다. 자체 대학 건물도 채 갖추지 못한 경영대학이 최고경영자과정을 위한 강의실이 없어 도서관의 빈 공간을 빌어서 강의실로 사용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1988년 4월에 문을 연 최고경영자(AMP)과정은 지역상공인의 큰 호응을 받으면서  제 1기 40명을 성공적으로 모집하였으며, 동년 9월에도 지속적인 관심 속에 제 2기 40명을 성황리에 모집하면서 서서히 지역상공인이면 꼭 다니고 싶어나는 공개강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9년 - 1990년>

1989년에는 경영학과 입학 정원도 100명으로 증원되어 경영학과․무역학과․회계학과 세 과가 공히 각 100명, 경영정보학과가 60명으로 입학정원이 360명으로 증원되었으며, 회계학과에 이어서 무역학과에도 석사과정이 개설되었다. 교수회에 의한 총․학장 직선제의 도입으로 경영대학 교수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서 제 2 대 경영대학장으로 이동수교수가 선출되었다.

동년 2월에는 김상욱 교수가 경영정보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 7월에는 휴직 후 해외 유학 중이던 김주엽 교수가 학업을 마치고 경영학과로 귀임하였다. 또한 회계학과 구본열 교수가 본인의 희망과 회계학과의 동의 아래 경영학과로 자리를 옮겨 재무관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국립대건물의 완공이 3년인 관례임에도 인건비 인플레이션 해당분과 3차년도 공사비 3억3천만원이 반영되지 않아 준공이 불가한 상황이 도래하여 이동수학장과 이장희 학생과장이 대학본부의 반대를 무릎쓰고 기획예산처를 방문하여 3차년도분 공사비를 확보하였다. 1990년말 이렇게 확보된 예산으로 경영대학 건물 마무리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1989년 건물 기공시 사회대쪽 라인에서 30m 이상 뒤쪽으로 건물 배치를 위해 6개월간 착공이 지연되기도 하였다.

 

<1991년>

1990년을 숨고르기로 보낸 다음, 본 경영대학은 1991년에 또 한 번의 커다란 도약을 하게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경영대학 단독 건물이 57동이 완공을 보게 되었으며, 두 번째로 교수 직선에 의해 선출된 제 3대 학장 김영래 교수는 경영대학 소속 4개 학과의 신축 건물 이전을 관리하면서, 그와 함께 경영대학 건물 주위의 환경 조성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특히 식재와 수목관리에 대해서 높은 안목과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권창원 행정실장은 대학 본부로부터 좋은 정원수를 받아서 이식하는 한편, 여러 교수들이 경영대학 건물의 신축을 축하하면서 내어놓은 식재 기금으로 경영대학 신축 건물의 조경에 온 힘을 쏟았다. 특히 김주엽 교수는 나무 농원을 소유하고 계시던 부친으로부터 식수 십 여 그루를 분양받아 경영대학 조경에 힘을 보탰으나, 그 후 대부분의 나무가 터가 척박하기도 하고 관리 부실로 죽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동년 11월에는 경영대학 구성원들의 오랜 꿈이던 경영대학원(특수대학원)이 설립 인가를 받는 경사를 맞았다. 이로써 본 경영대학은 중부권의 명실상부한 핵심적인 경영대학으로서의 거듭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988년 봄에 개설한 이후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그 성가를 인정받고 있던 최고경영자과정이 신설된 경영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둥지를 틀게 되었다.

한편, 1991년 김재명 교수가 무역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여 국제마케팅을 담당하였다.

 

<1992년>

1992년에 들어서면서 경영대학은 바야흐로 경영대학으로서의 완성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동년 3월에는 이미 석사과정이 개설되어 있던 무역학과․회계학과에 이어서 경영학과에도 석사과정이 신설되어, 경영대학의 모체가 되었던 경영학과․무역학과․회계학과 세 과가 모두 석사과정을 갖추게 되었다.

경영대학원이 경영대학과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초대 경영대학원장으로 무역학과의 정정도 교수가 임명되었다. 경영대학과 경영대학원이 독립된 기관으로 설립․운영되면서 학부 및 대학원의 운영과 관리 책임은 경영대학장인 김영래 교수가 맡고, 최고경영자과정을 포함한 경영대학원의 운영과 관리는 정정도 경영대학원장이 맡는 이원관리 체제가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이러한 이원 관리체제는 가뜩이나 비좁은 경영대학 내에서 교육 공간의 배정과 관리 문제를 둘러싸고 두 관리체제가 가끔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 등, 관리 및 행정상의 문제점을 노정하기 시작했다.

신설된 경영대학원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된 정정도 교수는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의 첫 신입생 23명을 선발하여 재무관리 전공 등 9개 분야의 전공 교육을 이수토록 하는 한편, 1988년에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던 최고경영자과정을 경영대학원으로 이전하여 함께 운영하였다.

동년 3월에 고승의 교수가 경영학과로 자리를 옮긴 구본열을 대신하여 회계학과 전임 교수로 부임하였고, 김영렬 교수가 경영정보학과 전임 교수로 부임하였다.

 

<1993. 3. - 1997. 2.>

이 기간은 경영대학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수회에 의한 학장의 직접선거 방식에 따라 1993년 3월에 무역학과 김복문 교수가 제 4대 경영대학장으로 선출되었고, 경영대학원장으로는 회계학과의 백대기 교수가 임명되었다.

1993년 3월에는 경영학과 박사과정이 경영학과, 회계학과, 경영정보학과 통합으로 개설되어, 경영대학에서 처음으로 재무관리 등 6개 전공분야의 경영학 박사를 육성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동안 김모교수의 불협화음과 어수선한 분위기 쇄신을 위해 1994년 5월 이장희 학생과장이 당시 방치되어 있던 돌더미중에서 좋은 돌을 선택해 경영대 앞마당에 이전 설치해 터다지기를 하였다. 큰돌 1개와 3남매돌을 이전시키기 위해 이교수는 김복문학장의 만류에도 정식 공문을 발송해 당시 김모 총무과장과 이택원 총장의 결재를 받아 경영대 상징석을 이전하였다.(PRS 김종원강사와 이장희 후원비) “세계로 웅비하는 경영학의 요람 으뜸 경영대”라는 문구를 각인하기 위해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전직원의 비상으로 24시간 대치하다 각인작업이 무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5년 3월부터는 그 동안 빈번하게 크고 작은 관리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던 경영대학과 경영대학원의 이원관리 제도를 학장이 경영대학원장을 겸임하도록 제도로 일원화함으로써 관리문제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이 제도의 실시로 제 5대 학장으로 선출된 경영학과 안길상 교수가 학장과 대학원장을 겸임하였다. 안길상 학장은 기존에 이장희 교수가 운영하던 5층 상업교육실습실(고시준비실)을 회계사시험 등 고시생을 위해 경영대학 고시원인 상진숙으로 명명하였다. 수험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경영대학원의 교육과정을 정비하는 등 경영대학의 내실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두 학장이 재임하는 동안 전임 교수들의 충원이 풍족하게 이루어졌다. 1993년 3월에 김영기 교수가 경영정보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였고 1994년에 전달영 교수가 경영학과 전임교수로, 김종대 교수가 회계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1995년에는 강성룡 교수가 생산관리 담당 경영학과 교수로, 김기홍 교수와 정중재 교수가 무역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1996년에는 신승묘 교수가 회계학과 전임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런가 하면 본 경영대학 전임교수들의 이임도 간간히 발생하였다. 1994년 8월에 김재명 교수(무역학과)가 불협화음과 개인 사정으로 퇴임하였고, 회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고승의 교수가 1995년 3월에 서울 소재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임하였다.

1996년 8월은 전임교수와 관련하여 경영대학으로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영대학의 역사상 처음으로 첫 번 째 정년퇴임 교수로 무역학과 김복문 교수가 1986년 8월에 이임하였다.

 



<1997. 3. - 1999. 2.>

1997년 3월은 개신벌에 경영학 교육이 시작된지 20년, 경영대학 출범 10년째를 맞이하는 해였다. 이런 뜻 깊은 해 3월에 경영학과 서도원 교수가 제 6대 학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즈음 들어 학장에 대한 직접 선거가 초래하는 폐해를 잘 인식하고 있는 경영대학 교수들은 직접선거보다는 선거를 거치지 않는 학장선출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학장을 역임했던 교수들이 합의하여 추천하는 학장 후보를 경영대학 교수회가 인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 때 쯤 해서는 본 경영대학이 거의 완성된 골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변화를 필요로 하거나 비상한 노력을 요하는 과제가 없는 다시 한 번 평온한 시기를 맞는 듯 했다. 1997년에 굳이 언급할만한 사건으로는 무역학과가 국제경영학과로 학과의 명칭을 변경한 것을 들 수 있다. 기존의 무역학과라는 명칭이 내포하고 있는 무역경제이론 지향이라는 의미를 탈색하고 글로벌 시대의 기업 경영을 지향하는 학과로 탈바꿈을 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학과 명칭을 국제경영학과로 변경하고자 했으며, 경영학과의 동의를 얻어 1988년 신학기부터 국제경영학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그러나, 평온을 가장하고 있던 이 시기에는 1997년 말에 한국 전 사회를 충격의 나락으로 빠뜨린 IMF 외환위기가 도사리고 앉아 있었다. IMF 사태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혼란과 가치 변화를 초래하였고, 그 변화의 물결에서 대학이라고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 경영대학도 그러한 변화의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관리의 효율화와 구조조정이 화두가 되던 시기에 대학도 효율성과 합리화의 제고하는 철퇴를 맞았다. 유사한 연구소와 학과의 통폐합이 강요되기 시작하였으며, 대학은 통폐합의 실적에 따라 그 우수성이 평가되는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교육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학교 기구의 통폐합은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드디어 1998년에 또 한 차례의 큰 변화가 경영대학에 들이 닥쳤다. 모집단위 광역화 시행에 따라 기존의 학과를 통폐합하여 학부제로 전환하라는 교육부의 명령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논의와 격론 끝에 경영학과와 회계학과가 완전 통합하여 공통 교육과정을 운용하는 경영학부로 전환하였고, 많은 부분 성격이 달라서 완전 통합이 어려웠던 국제경영학과와 경영정보학과는 국제경영정보시스템학부로 통합하되, 2학년에는 국제경영학 전공과 경영정보학 전공이 따로 독립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부분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이로써 경영학과․국제경영학과․회계학과․경영정보학과 등 네 학과로 구성되었던 경영대학은 1999년 3월부터 경영학부와 국제경영정보시스템학부 등 두 학부 체제로 출발하는 시행안이 마련되었고, 앞으로 닥칠 커다란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즈음 들어서면서 경영대학은 교수 충원과 관련하여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대학원과 경영대학원에 석사 과정생들이 늘어나면서 교수들의 수업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지만, 의대 및 수의대에 대한 교수 충원 압력과 정부의 긴축재정 여파로 경영대학은 신임교수 T/O를 더 이상 배정받지 못하는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교수가 15시간을 상회하는 수업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이를 경감시킬만한 뾰족한 방안은 없었으며, 수업의 질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할 것으로 판단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강사에 수업의 많은 부분을 맡기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 기간에 세 명의 신임교수가 경영대학에 부임하였다. 1997년 8월에 무역학과 전임으로 조강필 교수, 경영정보학과 전임으로 조완섭 교수가 부임하였고, 1998년 9월에 박유식 교수가 경영학과 신임교수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997년 말 IMF 외환위기의 한파가 한국의 뒤덮고 있을 때 무역학과 정정도 교수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는 슬픔도 겪어야 했다.

 

<1999. 3. - 2001. 2.>

1999년에 들어서면서 IMF외환위기의 여파로 최고경영자과정과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이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 동안 매학기 정원 40명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최고경영자과정 응모자는 30명도 확보하기가 어려운 실정에 처하고 있었고, 1998년부터 매년 86명을 신입생으로 모집할 수 있게 되었던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의 충원도 큰 부담이 되고 있었으며, 학부는 학부대로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경영대학이 초기에 보이던 학생들의 질적 우수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제 7 대 학장으로 김주엽 교수가 선출되었다. 가뜩이나 경영학을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수강하는 학생들로 수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던 교수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신임교수의 충원과 함께 학생 정원을 줄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고민에 빠져있던 바로 그 때에 본부로부터 뜻하지 않은 요청을 받게 되었다. 본부는 신설학과에 필요한 학생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입학정원을 줄일 의사가 있는 대학이나 학과를 찾고 있던 차에 경영대학이 교수 요원의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부는 경영대학 학부생의 입학정원을 30명 정도 줄일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고, 학부 입학정원을 30명 줄이는 대신 4명의 신임교수 T/O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학부생의 정원을 줄이는 데 대한 교수들의 이견 때문에 경영대학 교수들 사이에 격론이 일었지만, 마침내 경영대학은 학부 정원을 경영학부 15명, 경영정보시스템학부 15명 등 총 30명 줄이기로 합의하고, 경영학부 2명, 경영정보시스템학부 2명의 신임교수를 충원받기로 하였다.

2000년 3월에는 경영학과 박사과정에서 분리되어 경영정보학 석․박사과정과 국제경영학 박사과정이 신설되어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었다.

이 기간에 경영대 건물에 으뜸인상 조각과 정서함양을 위한 그림을 배치하고, 강의실을 계단식을 개조하는가 하면 강의실 벽에 대형 게시판을 여러 개 설치하는 등, 대학 자체적인 환경 개선 노력이 있었으며, 본부의 전공 강의실 개선 노력의 일환으로 빔프로젝트와 대형TV, VCR, 인터넷 망 등을 갖춘 첨단강의실이 학과 당 1개씩 총 4개가 설치되었다. 당시만 해도 빔프로젝트는 귀한 기자재였고 값 또한 비쌌기 때문에 캠퍼스 여러 곳에서 도난이 잦았으나, 경영대는 보완시스템을 철저하게 가동함으로써 다행히 도난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어려운 속에서도 전임교수의 충원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99년 9월에 정정도 교수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국제경영학과 전임 자리에 안승호 교수가 신임교수로 부임하였다. 2000년 3월에는 본부와의 거래로 얻은 교수 T/O로 4명의 전임교수를 선발하였는데, 2000년 3월에 경영학부 전임교수로 이춘우 교수와 조성빈 교수가 부임하였고, 국제경영정보시스템 학부에 이사영 교수(국제경영 전공 교수)와 김태성 교수(경영정보 전공 교수)가 부임하였다. 경영대학으로서는 입학 정원을 줄이고 교수 충원을 함으로써 악화일로에 있던 학생과 교수의 비율을 조금이니마 개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를 맞아 힘겹게 운영되던 최고경영자과정과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은 다행스럽게도 2000년에 들어와 국내의 경제사정이 완화되면서 정상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2001. 3. - 2003. 2.>

2001년 8대 경영대 학장으로 선출된 경영정보학과 김상욱 교수는 경영대학원의 이름을 교육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 e-비지니스 MBA로 바꾸고 교육과정도 기능분야와 경력 트랙을 결합한 메트릭스 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경영대학원에 역점을 두고 야심차게 운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로 한 해전에 김주엽 학장과 이장희 경영대학원 부원장이 정비했던 경영대학원 교육과정이 저리를 잡기도 전에 갑자기 전면적으로 바뀌고, 게다가 교육과정의 메트릭스 시스템 운영에서 비롯된 복잡성과 크게 늘어난 교과목으로 인한 강사 확보 어려움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최고경영자과정과 경영대학원의 운영도 아직 정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김상욱 학장은 경영대학 정문 왼쪽을 정원으로 정비하고, 그 옆으로 학생들의 휴식을 위해서 정자를 설치하는 등, 경영대학 주위 환경의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삭막하기만 하던 경영대학의 주위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

2001년 9월에 본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임달호 교수가 일본의 릿교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제경영정보시스템 학부 전임으로 부임하였다. 본교 출신 경영대학 교수 1호였다. 이어서 2002년 3월에 박상수 교수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국제경영정보시스템 학부에 전임으로 둥지를 틀었다.  

전임교수의 이임도 있었다. 조성빈교수가 2001년 8월에, 이춘우 교수가 2002년 2월에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임하였다. 학생 정원을 줄이면서 어렵게 얻은 신임교수 T/O로 선발한 교수 4명 중 2명이 재임한 후 3년 이내에 이임을 함으로써, 규정에 따라 경영대학은 이들의 후임을 뽑기 위해 만 2년을 기다려야만 하였다. 점차 본 경영대학이 수도권 대학에 교수 확보 경쟁력에서 밀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징조를 남기게 되었다.

 

<2003. 3. - 2005. 2.>  

2003년 9대 경영대 학장으로 선출된 무역학과 이현종 교수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임기 동안 경영대의 전산실 운영과 경영대학 공용 데이터시스템의 효과적인 관리에 힘을 기울였다. 경영대학 전산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외부컨설팅을 받아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한편, 교수들과 학생들의 공용소프트웨어와 자료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즈음, 경영대학은 연구실과 교육 공간의 부족이 그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신임교수들이 속속 부임하고 있었지만, 연구실을 배정해 줄 수 없어서 대학 비품창고까지 비워서 연구실로 개조할 정도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대학원생을 위한 공간과 세미나실까지 줄이는 긴축의 연속이었다. 경영대학의 공간 부족은 수 년 동안 지속되고 있던 경영대학의 핵심적인 문제였고, 이현종 학장은 이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영대학 5개년 발전계획 등을 통하여 경영대학의 공간부족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마침내 본부에서는 신축 계획인 인문사회 종합 강의동의 1/2을 경영대학의 강의 공간으로 배정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오랜 숙원이던 공간부족의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2004년에는 경영학과 박사과정에서 분리되어 회계학 박사과정이 신설되어서 경영대학 내 모든 전공 분야가 박사과정을 가지게 되어 학문연구와 교육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2003년 9월에 박종일 교수와 박상언 교수, 2004년 3월에 박한순 교수, 2004년 9월에 주영진 교수 등 네 명의 신임교수가 경영학부 전임교수로 부임하였고, 2004년 3월에 송영욱 교수, 2004년 9월에는 본교 출신 경영대학 2호 교수로 권순동 교수가 국제경영정보시스템학부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또한 2004년에 회계학과 초대 학과장이었고 제 2대 경영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이동수교수가 정년 퇴임하였다.

 

<2005. 3. - 2007. 2.>

2005년 3월에 제 10대 학장으로 선출된 정재권 교수는 경영대학 관리의 내실을 기하는 한편, 동년 9월에 충주 지역에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하고 과정장으로 동년 8월에 정년을 맞은 양종택 교수를 선임하였다. 이미 동 지역에 충주대학이나 건국대학교 충주 분교가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하고 있었으나, 정재권 학장과 백대기 교수, 양종택 과정장의 노력에 힘입어 충주지역 최고경영자 과정은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2005년 9월 개강과 함께 제 1 회 과정생으로 30명을 선발하여 개설한 충주지역 최고경영자과정은 2007년 10월 현재까지 지역상공인들의 관심 속에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정재권 학장은 2006년에서 2010년까지 경영대학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한편, 이 발전계획 속에 빠른 시일 내에 한국경영인증원으로부터 경영교육인증을 받기 위한 준비사항을 조사하고, 미비한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경영대학 내 정비에도 힘을 쏟아서, 1층의 학생 휴게실을 정비하고, 합동 강의실 옥상을 학생들의 휴식 공간으로 정비함으로써, 학생 휴식공간의 부족에 따르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하였다.       

2005년 3월에 이상민 교수, 2006년 3월에 김지대 교수가 경영학부 전임교수로 부임하였고, 동년 9월에 김성홍 교수와 이태민 교수가 경영학부 전임교수로, 이형택 교수가 국제경영정보시스템학부 교수로 부임하였다.

 

<2007. 3 - 현재>

2007년 3월은 개선벌에 경영학 교육이 시작된 지 만 30년이 되는 때이다. 이 의미 깊은  해에 11대 경영대학 학장으로 이장희 교수가 선출되었다. 청주에서 자라 넓은 지역 연고를 가지고 있는 이장희 학장은 현재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경영대학을 다시금 활기찬 미래의 대학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 상공인들의 글로벌 의식을 고취할 목적으로 해외의 대학들과 연계한 CEO 대상 교육프로그램인 글로벌 CEO 과정을 야심차게 진행시키고 있는가 하면, 한국의 경영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경영학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는 교육기관에 대한 인증 심사기관인 한국경영교육인증원에서 실시하는 인증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그 기준에 따라 교육과정과 강의를 포함한 관리시스템을 정비하고 규정 개폐 등 예비인증 준비를 적극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으며, 한국경영교육인증원이 예비인증 심사 신청 1차 마감일인 11월 말까지 인증신청을 하게 된다.

본 경영대학은 2008년에 국내 경영교육인증을 받기 위한 계획안과 그 실천계획이 마련됨으로써, 중부권과 국립대중에서 최초로 인증을 획득하게 되어 경영학 교육의 질적 수준이 향상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 학장이 진행할 일들 중 빼놓지 않고 언급되어야할 부분으로 화장실의 개조를 들 수 있다. 악취와 여염으로 찌들어 그 동안 외부 인사들에게 경영대학의 가장 부끄러운 장소로 여겨지고 있던 화장실이 초근대식 화장실로 개조되면서 깔끔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와 함께, 합동강의실도 부분적으로 낡은 부분을 수리하고 빔프로젝트 등, 오래된 기자재를 새것으로 바꾸는 등 개선을 통하여 아쉬운 대로 외부 행사를 치룰 수 있을 만큼 보완하였다.

또한 경영대학 1층 로비 가운데에 자리하여 가뜩이나 비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으뜸 조각상을 정문 옆 빈 공간에 비치함으로써 로비의 활용도를 높이고 답답함을 많은 부분 해소하였다. 그 밖에 경영대학 주위 환경도 기존의 식수를 재배치하고 새 나무를 식재함으로써 새롭게 정비하였다.

제2경영관(인문사회종합강의동)내에 연구역량과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5・6층에 연구실 24개를 임달호 부학장과 같이 노력해 확보하게 되었다.

장학금과 관련된 학생과장 시절부터 학생회 활동(PRS영어강좌) 지원금을 효과적으로 관리 및 지도하여(이미 으뜸장학금을 91년 92년 지급한바있음) 증식한 결과 총1억원 기금으로 경영대 학생들에게만 지급하는 법인“으뜸장학금”을 만들게 해 2007년 9월 지급하였다. 그리고 이장희 학장과 백대기 교수의 노력으로 경영학부 총동문회를 통합 출범시키기도 하였으며 경영대학 현판제작, 기념식수를 하고 경영대학 영문명을(College of businss)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산학협력과 취업증진을 위한 경영취업특강(포럼)을 매주 개최하여 기업에 대한 이해와 학습효과제고, 취업대책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복잡하고 운영의 난맥상을 드러낸 경영대학원 운영 및 교과과정 제도 개선을 획기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지난 30년 동안 경영대학은 정말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룬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30년 전, 전공교수 한 명 없고, 교수 연구실도 없이 긴의자에 앉아서 강의를 기다리던 그 시절을 지금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자족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의 갈 길이 너무도 험하고 멀다. 앞으로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이 직면하게 될 도전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의 성장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시장에서 큰 어려움 없이 성장을 도모하고 안정을 꾀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생존마저 보장받기 힘들게 환경이 변하고 있다. 국내의 유수 경영대학들은 벌써 미국의 경영교육인증인 AACSB 인증을 준비하고 있고, 지역거점 국립대학교로서는 전남대학교가 이미 AACSB의 인증 절차를 밟고 있고, 우리보다 역사도 오래 되고 질적으로도 우수한 많은 국립 거점대학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교육부는 한국의 MBA 프로그램의 국제 경쟁력을 고취할 목적으로 새로운 경영학 프로그램인 경영전문대학원을 일정 기준에 도달한 대학에만 인가를 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기본 방향을 잡고 있는데, 본 경영대학은 거기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모자람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한국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지방 대비 서울의 집중도는 더욱 강화되고 있고, 그 결과 본 경영대학이 가지고 있던 수도권과 가까운 거리적 이점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 여파로 우수한 교수 확보도 어렵고,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유치하기가 또한 어렵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우수한 신입생의 유치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곳 개신벌에 경영학 교육의 씨앗이 떨어진지 만 30년. 그 동안 화려하게 꽃을 피기도 했던 본 경영대학은 또 하나의 벽에 부딪혀 도약과 추락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과연 우리 경영대학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제 그 길을 정말 진지하게 모색해야할 때가 되었다. 지금 아니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